카테고리 없음

내맡긴 자녀, 자선

소눈망울 2017. 8. 21. 11:52

<하느님께 내맡겨 내가 하느님의 것이 됐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지갑, 이것은 내 지갑이라는 구분이 아직 남아 있습니까?>

♣깨달음은 지혜가 아니라, 지혜가 열리는 방법♣

하루는 어떤 부자가 야곱을 찾아왔다.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합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당신의 자유를 책임져 주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말했다.

그는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자유를 얻는 것이란 말입니까?"

"지갑의 열쇠는 그것을 가진 사람의 마음 속에 있고, 마음의 열쇠는 그의 지갑 속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자선을 베풀기 전에는 당신은 욕심 속에 갇혀 있게 되는 것입니다."

- 노아벤샤의 [빵장수 야곱]에서-

 

♥..유태인의 자녀교육 40가지..♥


01. 남과 다르게 생각하라.
02.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03. 머리를 써라.
04. 지혜가 뒤지는 사람은 매사에 뒤진다.
05. 배움은 벌꿀처럼 달다.

06. 싫으면 그만두라 그러나, 하려면 최선을 다하라.
07. 아버지의 권위는 자녀들의 정신적 기둥.
08. 자선행위를 통해 사회를 배운다.
09. 배움을 중지하면 20년 배운 것도 2년 내에 잊게 된다.
10. 상상력에도 한계는 있다.

 
moowee 16.05.20. 11:10



11. 추상적 사고는 `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12. 은은 무거워야 하나 무겁게 보여서는 안 된다.
13. 형제간의 두되 비교는 둘을 다 해치지만 개성의 비교는 둘을 살린다.
14. 내 것, 네 것,우리 것을 구별시킨다.
15. 이야기나 우화의 교훈은 어린이 자신이 생각토록 한다.

16. 노인을 존경하는 마음은 아이들의 문화적 유산이다.
17.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거나 애기를 들려준다.
18. 오른손으로는 벌을 주고 왼손으로는 껴안아준다.
19. 심한 꾸지람을 했더라도 재울 때는 다정하게 대한다.
20. 제한된 시간 내에 마치는 습관을 길러준다.



 
moowee 16.05.20. 11:11


21. 평생을 가르치려면 어릴 때 마음 껏 놀게 하라.
22. 가정교육에서 좋지 못한 것은 서슴없이 거절한다.
23. 조상의 이름을 통해 가족의 맥을 일깨워 준다.
24. 친절을 통해 아이를 지혜로운 인간으로 키운다.
25. 세대가 다른 여러 사람과 친밀하게 접촉하라.

26. 친구를 선택할 때는 한 계단 올라서라.
27. 아이들끼리 친구라고 해서 그 부모들까지 친구일 수는 없다.
28. 용돈을 줌으로써 저축하는 습관을 길들인다.
29. 기회 있을 때마다 민족의 긍지를 심어준다.
30. 남한테 받은 피해는 잊지 말라, 그러나 용서하라.




 
moowee 16.05.20. 11:14


31. 돈으로 선물을 대신하지 말라.
32. 음식에 대해 감사 드리는 것은 곧 신에 대해 감사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33. 성 문제는 사실만을 간결하게 가르친다.
34. 어릴 적부터 남녀의 성별을 자각시킨다.
35. 텔레비전의 폭력 장면은 보여주지 않지만,다큐멘터리 전쟁영화는 꼭 보여준다.

36. 자녀에게 거짓말을 하여 헛된 꿈을 갖게 하지 않는다.
37. 가족 모두가 모이는 식사시간을 활용한다.
38. 최고의 벌은 침묵이다.
39. 협박은 금물이다.벌을 주든 용서를 하든지 하라.
40. 자녀들의 잘못은 매로 다스린다..




 
moowee 16.05.20. 11:16
moowee


<"내맡긴 자녀는 주님이 알아서 이끌어 가신다." >

40가지, 50가지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십니다.

유대인은 자신의 민족의 이익만을 아는
신앙적 이기주의자들(선민의식)이 많음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버지 하느님, 우리 하덧사의 모든 아이들을 아버지께 맡기오니 이끌어주소서!




@
Re:복음 / 영성생활과 애덕(정무웅 신부님) ★영 성 4. 애덕과 계명 그리고 복음적 권고 | ★영 성
무화 | 등급변경 | 조회 187 |추천 0 | 2017.05.15. 08:47 http://cafe.daum.net/likeamaria/EIIY/380 

Ⅱ. 합일과 애덕



애덕은 광의로는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고  사랑 속에 머무르는 상태이며 

협의로는 대신덕의 하나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  또는 그분을 사랑하는 습관적 성향으로,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요한 14,15~16).


애덕이 행위로 드러날 때는  사랑 받기보다 사랑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행위는 하느님과 이웃을 대상으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과 일치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 




3. 애덕의 이중성



애덕의 완성은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고(情). 

그리고 그 사랑의 충동에 의해 실천으로 나타난다. 


계명을 지키되  먼저 향주덕의 충동을 받아 

하느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명을 실천해야 한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하여  실천적 사랑으로 열매 맺는 애덕 행위는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이 따른다. 




4. 애덕과 계명 그리고 복음적 권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완덕은  

대신덕에 의한 계명 준수와  윤리덕에 의한 복음적 권고로서 고찰되어야 한다.”고 한다. 

완덕은 계명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반드시 애덕으로 계명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서에서도  애덕에 의한 계명 준수의 중요성을 

“하느님을 사랑하라”(신명 6,5)는 말씀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레위19,18)는 말씀을 합쳐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글은 이 두 계명에 달렸다”(미래 22,40)고 말씀하심으로써 


이웃 사랑을 하되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이 기뻐하시도록.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애덕만이  우리를 하느님과 온전하게 결합시킨다. 

그리고 애덕은 모든 덕의 형상적 원리이자 감독자로서  완덕의 본질을 이룬다.

그리스도의 완덕이 사랑의 계명, 

즉 애덕에 의한 계명 준수로써 이뤄진다는 이 말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애덕 없는 계명 준수는  인간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며 

오히려 인간을 율법의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다.


율법의 노예에서 구원되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으로써 이루어지는데 (로마 4,24).

세례를 통해  인간은 하느님을 사랑 할 수 있는 애덕의 힘을 갖게 되어 

이제는 계명을 지킴에 있어서도  억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나 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하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이 주신 애덕으로 계명을 지키면 

자연히 자발적이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수계 생활을 할 수 있기에 

내적으로 기쁨과 평화가 충만할 수밖에 없다. 

물론 초기에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약하여 

의지적으로 실천하는 인간적 노력이 요구되지만, 

차츰 애덕이 성장하면서  자발적이며 기쁜 마음으로 이를 지키게 된다. 


이런 모습은 많은 성인들에게서 볼 수 있다.


한편  완덕은 도구적으로는 복음적 권(청빈․정결․순명)에 있다. 

권고는 애덕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 준다. 

즉 대신덕에 의한 계명 준수를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을 피하게 해주는 도구로서 

궁극적으로는 애덕을 지향한다.


그러나

“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신명 6,5)는 마음을 지니고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을 실천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인다. 

그러나 

현세 생활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계명 준수는 가능하다. 

여기에서 복음적 권고의 필요성이 나온다. 

완덕은  이차적으로는 

애덕에 확실하게 장애가 되는 것의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복음적 권고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난은 계명 준수를 방해하는 무질서한 소유욕에서 해방시켜 주는 도구이며, 

순명은 무질서한 지배욕에서 해방시켜 주며, 

정결은 무질서한 성욕에서 해방시켜 준다. 

여기서 무질서한 욕망이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만을 무작정 고집하려는 경향성을 말한다.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권고를 따라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장애물 제거는 자기 자신을 끊는 이탈과 포기의 행위로서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끊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한다“(마태 16,24)

는 말씀과 같이 

애덕에 의한 계명과 함께 권고가 , 완덕에 나아가는 길임을 분명히 말해 준다.



예수는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끊어 버리고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다. 

피조물로부터의 이탈인 권고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고 집중하게 하는데 필요한 도구적 요소이며 

계명을 지키는 데 방해되는 것을 제거해 준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는 합일에의 훌륭한 길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적 완덕은  

본질적으로는 애덕에 의한 계명 준수와  

도구적으로는 복음적 권고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완덕에로의 길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자 되어라”(마태 5,48)와 같이 

세례 때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보편적인 부르심이며 의무이다.


이와 같은 대신덕에 의한 계명 준수와 권고를 강하게 실천할수록 

성령의 은혜가 영혼에게 더욱 많이 전달되며 

이때 성령은 애덕을 더욱 활발히 완성시켜 나간다. 

왜냐하면 성령은 

애덕으로 하여금 더욱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는  하느님의 은사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향주덕으로 닦여져 맑을수록  그만치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많이 지닐수록  

그만치 하느님께서 비춰 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내리시는 까닭이니 

사랑이야말로 은혜가 오게 하는 길이요 원인이다”(산길Ⅱ29,6).


@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드리려면?
(2)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까? ■ 내맡김 영성 ■


당신이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면,
그리하여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드리려면
저의 경험을 그대로 따라 하시라.
제가 경험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무화 17.05.15. 09:00


"사랑하올 나의 주인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의 화살기도를
하느님을 사랑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약 3~4개월 정도 하루에도 쉴틈없이 수천번씩 바쳐 보시라.

"3개월 동안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 영혼은 틀림없이 완덕에 도달한다.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제가 직접 체험해 보았다!
분명히 그대로 되어질 것이다! (창세 1,7 ; 그대로 되었다.)

분명, 하느님의 사랑을 얻어내어
서서히 하느님을 뜨겁게 더욱 뜨겁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

 
무화 17.05.15. 09:36

제가 생각할 때,
하느님을 얻는 여러 가지 방법(순교, 헌신적 봉사 등) 중에서
이 방법이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방법으로 하느님을 "진실로 뜨겁게 사랑"하게 될때,
그때야 비로서 "하느님의 마음"이 열리시게 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기꺼이 내맡길 수 있는 것이다.

#
[오늘날 적지 않은 신앙인들이 '외적 신앙행위(미사참례와 성사생활, 성체조배, 묵주기도, 자선과 봉사활동, 단체생활)'가
자신의 신앙과 구원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다.

신앙의 외적행위, 외적활동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신앙과 구원의 한 '부분'이다
드러나는 외적 신앙행위로만 다른 사람의 신앙심을 판단해서도 안되는 것이며
신앙인 스스로 거기에 안위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인간 구원에 있어서의 전부(전체)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하느님의 방식대로", 하느님의 뜻대로 하느님을 섬긴다
 
무화 13.10.15. 08:58

왼쪽 등이 가려운데, 오른쪽 등을 긁어주는 꼴이다
가렵지 않은 곳을 긁어주면 가려운 곳이 더 가렵게 되고, 긁어준 부분이 더 아플 뿐이다
상대의 어느 부분이 가려운지 먼저 물어보고 긁어주어야 한다

하느님은 다만, 우리의 사랑을 원하신다
그분의 원의를 채워드리려면 그분의 뜻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분의 뜻을 따르면 '부분들(미사등 성사생활과 외적 신앙행위)'이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신앙의 외적행위들'은
오히려 하느님을 '비참하게' 해 드릴 뿐이다]◆<후속> 6. 미저리(misery) 的 신앙(?)의 위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