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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토종콩이 바꾼 삶, 콩과 함께 할 평생
소눈망울
2016. 12. 29. 23:07
http://www.nocutnews.co.kr/news/4380544
함씨네토종콩식품 함정희 대표의 콩과 함께 한 이야기

어려서는 밥상에 콩이 없으면 울음보를 터트렸고, 커서는 콩이 좋아 두부공장 사장과 결혼했다.
토종콩을 지켜야한다는 일념에 사업과 가정이 모두 파탄지경에 이르기도 했지만, 토종콩은 평생의 사명이 됐다.
콩 때문에 울고 웃었던 인생,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토종콩 사랑. 콩을 빼고 나면 삶에 대한 이야기는 콩깍지만 남는 수준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
함씨네토종콩식품 함정희 대표(61)의 이야기다.
◇ 밥상에 콩이 없으면 울던 아이
"세네 살 때부터였데요. 콩밥을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고 울기만 했데요."
함 씨는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콩을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학창시절에는 도시락에 콩자반이 빠진 적이 없었다. 처녀 시절에는 공무원으로 일하며 굳이 결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27살 노처녀가 되서야 가정을 이뤘다.
"남편이 두부공장 큰아들이었거든요. 그래서 혹한 것 같아요."
콩을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동했다고 함 씨는 웃으며 말했다.
◇ 삶을 송두리째 바꾼 강연
남편은 당시 거의 모든 사업자가 그러했듯 수입콩으로 두부, 청국장 등을 만들었다. 콩식품만 놓고 보면 전북지역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사업은 승승장구였다. 함 씨의 삶은 적어도 이때까지는 평온했다.
2001년 9월 1일. 함 씨와 그 가족, 그리고 사업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우연히 고려대 안학수 농학박사의 강연을 들은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유전자조작식품(GMO)의 위험성을 주제로 한 강연이었다. 함 씨는 당시의 신문스크랩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함 씨는 '용기는 72시간 내에 행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대로 행했다. 10여명에 달하던 직원들에게 "우리는 이제 토종콩만 다룰 겁니다"라고 선전포고하듯 선언했다.
◇ 행복 끝 고생 시작
15년 전인 2001년이나 지금이나 토종콩은 수입콩에 비해 적게는 5배, 많게는 10배까지 비싸다. 가격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2001년 당시 전북지역 백화점과 대형마트, 대기업, 학교급식 등에 두부, 청국장 등을 납품하며 거둔 매출이 해마다 5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토종콩 선언 이후 사람들은 '미쳤다'고 수군거렸고 거래처는 다 끊겼다.
납득할 수 없는 함 씨의 결정에 가장 당황한 것은 남편이었다.
"남편이 절 정신병원에 가두려고도 했고요,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이혼하는 단계까지 갔었죠."
함 씨는 자녀를 데리고 가출까지 강행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남편도 함 씨의 뜻을 받아들였다.
가장 큰 벽이었던 남편이 가장 큰 '백'이 된 것이다. 하지만 사업은 악화일로를 넘어 도산 직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 평생 잊지 못할 은혜
한 달 적자가 2000~3000만원에 달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토종콩으로 만든 두부와 청국장 등을 들고 발이 부르트도록 전국을 돌았지만 거래처 확보는 요원했다.
포기가 임박한 무렵, 한 후원자가 함씨네를 살렸다. 일 년여 이상 죽을 쑤고 난 뒤인 2003년의 일이다.
"당신은 우리 콩을 지킬 사람이지 돈 벌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돈 벌면 갚고 아니면 그냥 둬도 돼."
췌장암 말기로 두 달 시한부인생 선고를 받았다가 함씨네 두부를 먹고 건강을 되찾았다는 고객이 집을 담보로 천만 원을 빌려 준 것이다.
이 무렵 친환경 유기농 상품을 판매하는 초록마을에 입점도 확정됐다. 드디어 활로가 트인 것이다.
◇ 고생 끝에 찾아 온 행복

한 번 상복이 터지자 그칠 줄을 몰랐다. 농림수산식품부장과 표창(2008), 대통령상(2010), 경찰대학교 감사장 수상(2013),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 표장(2011) 등 상훈이 끊이지 않았다.
또 경찰대 외래교수로 출강하며 5년째 강의를 진행하는 명강사도 됐고, 전북특허발명회장, 독립운동가 최재형 장학회 홍보대상 등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2007년 마늘청국장환을 개발해 특허를 냈고, 2009년에는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에 '함씨네밥상'이라는 유기농 음식점도 냈다. 몸이 아픈 사람이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예년에 비해 함씨의 사업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어렵고 수입콩을 다룰 때와 비교하면 매출은 턱없이 적다.
함 씨는 "예전에 비해 이윤추구는 상대가 안 되지만, 지금의 가치와 보람은 감히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고 웃으며 말했다.
◇ 콩처럼 둥글게, 쉼 없이 굴러가기
토종콩에 대한 열정을 뒷받침할 지식을 쌓기 위해 함 씨는 학습도 꾸준히 하고 있다.
전주기전대 식품생명과학 전공에 이어 전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고려대 경영정보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현재는 원광대 대학원에서 보건행정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논문 주제는 '국민 식생활과 건강 수준에 관한 연구'다. 서구화, 육식화로 각종 성인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마늘과 청국장이 만병의 근원인 변비 예방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밝히는 작업이다.
함 씨는 사람마다 나라마다 가진 재능이 다르다고 믿는다. 자신은 토종콩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한국은 석유 등 부존자원은 없지만 발효식품이라는 훌륭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함 씨는 "우리 발효식품 두유 전문점을 만들어 외국 커피 전문점과 어깨를 나란히 경쟁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꿈을 밝혔다.
콩을 좋아해서인지 콩을 닮아간다고 말하는 함 씨. 그는 콩처럼 둥글게 하지만, 쉼 없이 달려가고 있다.
출처 : 장두석의 생명살림
글쓴이 : 솔방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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