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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소눈망울 2017. 8. 11. 18:58


<위대한 계시 (Vision) 영화 중에서>


힐데가르트의 탄생으로부터 무려 100년이나 이전의 사건을 먼저 보여주고
100년전 그곳에 있었던 소녀와 100년 후의 힐데가르트와 겹침으로써 영화는 자신의 메시지를 예고한다.

광적이고 병적이며 지상의 삶을 부정하는 어두운 신앙에 맞서 힐데가르트가 바라볼 태양을~~~


영화는 이후 원장 수녀가 된 힐데가르트의 궤적을 따라간다.
육체를 매질등으로 가혹하게 학대하는 것을 마치 신앙의 증거처럼 여기는 세태에 대해
힐데가르트는 '육신이 다치면 영혼도 다친다'고 말하며
육체를 아끼고 가꾸기를 권장한다.


밑에 있는 수녀들에게 각종 약초의 효능을 가르치고

또한 음악과 보석등을 이용해 육체를 실험한다.

때때로 수녀들과 함께 음악극을 하고 그 과정에서 늘 싸매고 있던 머리를 풀고 드러내기도 하며

이것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 다른 수녀에게 '신은 이런 아름다움을 사랑하신다'고 대답한다.


영화는 크게 네개의 이야기의 결합으로 되어있다.

육체와 지상의 삶을 부정하는 신앙에 대해 오히려 그것들을 긍정할것을 말하는 힐데가르트의 사상.

자신이 본 비젼을 당당하게 밝히고 교황청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이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

독립된 수녀원을 만드는 과정.

가장 강렬한 경험을 경험하도록 한 리하르디스와의 관계와 이별. 이 네가지의 결합이다.

그렇지만 이 네가지의 이야기는모두 작품의 핵심 메시지인

"육체와 삶의 긍정"이라는 전제위에서 조립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힐데가르트가 긍정했던 것들의 다른면-


영화는 성인(聖人) 에 대한 통념과는 달리 힐데가르트의 성격적 결함 역시 생생하고 분명하게 드러낸다.

위의 리하르디스와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영화내내 독선적이고 이기적으로도 보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모습등이 반복해서 제시된다.


그러나 이는 '죄'라는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동성'의 또 다른 면으로서 제시된다.

육신과 감정을 가진 인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늘 문제를 일으키지만 사랑스러운 생동성 

고결하지만 인간같지는 않은 다른 성인(聖人) 들이 가지지 못한 사랑스러운 생동성,

이는 힐데가르트가 자연과 세계를 인식하고 긍정하는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육체와 삶의 긍정과 여성은 어떻게 만나는가?


예를 들어 힐데가르트와 수녀들은 머리카락을 드러내고 화려한 의상을 두른채 음악극을 공연하는데

이에 대해 여인들에게 머리를 가리고 정숙한 복장을 갖출것을 요구하는 바오로의 주장을 근거로 비난이 나오자

힐데가르트는 교리로서 이를 반박한 후  "신은 아름다움을 사랑하십니다" 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한다.


신은 아름다움을 사랑 하십니다 라며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한다.

이는 육체를 다양한 물건으로 아름답게 꾸미며 삶을 가꾸는 것이 결코 신앙과 충돌하지않으며

오히려 그것역시 신을 찬양하는 방식일수 있다는 힐데가르트의 신념의 한 사례이다.


이러한 사상위에서 여성이라는 존재역시 부끄러우며 자신의 존재를 감추어야 할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하나의 작품으로써 드러내고 긍정할수 있는것이 된다.

딱히 근대에 등장한것처럼 뚜렷한 페미니즘적 의식을 가진건 아니지만 여성을 남성과 다를것 없는 신의작품으로써

파악하고 신이만든 그 존재 전부를 사랑하고 긍정함으로써 힐데가르트는 놀라울 정도의 파격을 성공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특히 육체와 삶의 긍정이라는 메세지를 중심으로 어둡고 병적인 신앙에 기쁨과 긍정의 햇살을 내리는 태양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힐데가르트의 궤적을 현대인들에게도 의미있는 형태로 잘 정리하고 형상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