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서적♣/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스크랩] 제2장 -05 하느님은 우리 마음에 끊임없이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고 계시지만 그 문자들은 심판 날까지 볼 수 없을 것이다.

소눈망울 2017. 1. 22. 20:45




제 2 장


거룩함이 끊임없이 샘솟아나는 원천인 현순간을 감싸안음에 대하여



 05 


하느님은 우리 마음에 끊임없이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고 계시지만

그 문자들은 심판 날까지 볼 수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히브 13, 8)

라고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세상 창조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 안에 살아계시며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  우리 안에서 함께 일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이 생겨난 다음부터 종말 때까지의 모든 날들은  단 하루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도 계셨으며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이러한 생명의 활동을  먼저 당신 자신 안에서 시작하셨지만, 

그 다음에는  성인들 안에서 결코 중단하는 일이 없이 계속하고 계십니다.


모든 시대를 품으시며 시대를 넘어서는 예수님의 생애시여!

매순간마다 새로운 활동을 일으키는 생애이시오니! 

만일 전 세계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고 행하신 모든 것(요한 21, 25)과 

그분의 내적 생활의 전(全) 활동을 담을 수만 있다면, 

또 복음이  

얼마 되지 않는 세부 사항들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기록해 놓지 않았다면 

그분의 지상 생활의 유년 시기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겠지만, 

대단히 충실한 것이었다면 

끝없는 경이로움을 펼쳐나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신비스런 생활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말해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복음서가 쓰여져야만 했을까요?


엄밀히 말해  모든 역사는 결국 하느님이 활동하시는 역사에 불과합니다. 

절대 진리로서 성령은 장구한 시간 속에서 약간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놓으셨습니다. 

성경 안에서 성령은 

이 넓은 대양과도 같은 시간으로부터 몇 방울의 물을 모은 것에 불과한 성경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려진 모습들을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인류 가족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우리는 첫 인간의 기원과 혈통 그리고 가계(家系)를 찾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 전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신비로운 흔적을 보여주는  하나의 자그마한 도표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은 

단지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하는 데 있어 필요한 것만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 밖에 모든 것은  성령께서 당신 지혜의 부요함 가운데 숨겨 간직해 두고 계십니다. 

저 넓은 대양과도 같은 그분의 모든 활동으로부터 

성령은 소량의 물방울들만을 새어나가도 허락하십니다. 

이 물방울들은 

예수님께 이른 다음  사도들 안에서 그 모습을 감췄다가  묵시록에서 사라져 없어집니다.

이처럼 마지막 시간에 이를 때까지 

선한 사람들 안에 드러나는 예수님의 활동에 관한 역사는 

신앙으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믿음의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은 이제 우리 마음을 떠나 더 이상 복음을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매 순간 행하고 있는 모든 것은 성령께서 일러주신 새로운 복음을 사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거룩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종이가 될 것이고  우리의 행동들은 잉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작용은 펜이 되고 

그 펜으로  그분은 생명을 주는 복음서를 쓰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쇄소와 같은 이 세상을 떠나  마지막 영광스러운 그날이 닥쳐올 때까지 

이 복음서를 읽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성령께서 쓰고 계시는 그 책은 인쇄 중에 있는데, 

그 책은 얼마나 훌륭한 것일까요! 

그 책은 인쇄 중입니다

활자가 조립되며  인쇄 잉크가 마르고 제본되어 

종이가 책이 되어 가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빛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종이는 잉크보다 더 검고  타이프 활자는 서로 뒤섞여 있습니다. 

거기에 담겨지는 말은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며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늘나라에나 가서 읽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친구들을, 

그들이 지닌 외모가 아니라  바로 그들이 지니고 있는 본질 안에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역사하심의 복합성(複合性)에 대해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느님이 그들을 위해 일하시고  그들 가운데서 활동하시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즉 글자들이 모르는 것들이고 

마구 뒤섞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각 페이지가 잉크로 칠해져 있는 경우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 책을 읽을 수 있겠습니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가치 있는 서적들이 

스물여섯개의 알파벳 숫자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것이 지닌 경이로움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우주 안에서 행하시는 것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각각의 모든 글자가  그 자체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 작은 모양으로  매우 심오한 신비들을 지니고 있는 한 권의 책을 

우리가 어떻게 읽을 수 있으며  또 얼마나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같은 신비들을 알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느낄 수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믿음으로써만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또한 신앙은  

원래부터 이러한 신비들이  참으로 진실되고 좋은 것이라고 판단해 줍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신비들은 

그 자체로 우리 이성이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참으로 모호하기 이를데 없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성령이시여, 

생명의 책 안에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도록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오니 

보잘것없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제가  볼 수 없는 것을 믿게끔 하여 주십시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시고  설명하시며  책의 글자들을 배열하시어 

그 책을 알아듣게끔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제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입니다. 

비록 이유는 알 수 없을지라도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신이 진리 자체이시고 

또 진리 외에  다른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글자들을 서로 모아 말을 만드시고  그것들을 또 모아 문장으로 엮으십니다. 

아마도 그 문장 속에는 셋 혹은 여섯 가지 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장들은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합니다. 

어떤 문장들은 때론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당신 홀로 사람들의 생각을 아시기에 

당신만이  사람들의 생각을 말 속에 넣어 연결시키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의미 있고  또 모든 것은 완전한 의미를 지닙니다. 

한 문장은 끝이 나는데  그것은 당신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문장에는 쉼표 하나 빠져 있지 않고  마침표 하나 빠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제가 믿고 있지만  

영광의 날에 그토록 많은 신비들에 관한 비밀을 밝혀주게 될 때, 

이 지상생활동안 제가 가졌던 지식이 얼마나 불완전하였는지를 

저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저에게 

그토록 혼란스럽게 보이고  앞뒤가 맞지 않으며  바보스럽고  변덕스럽게 보이는 것이 

그때에 가서는 기쁨이 될 것이며, 

저는 그 아름다움과  지혜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경이로움에  황홀해 할 것입니다.




출처 : 마리아처럼-거룩한 내맡김
글쓴이 : 무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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